[단편소설] 식인종 미니메이 (HOME) 수정/삭제 +스크랩하기 (HIT: 942/VOTE: 28) 1. 오늘이........ 몇 일이더라? 살아있다...는 느낌. 그 어떤 감각조차 알 수 없다.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깔깔한 혓바닥의 느낌이나 푸석하게 메말라가는 피부층의 느낌도. 안구가 보고 있는 풍경의 변화나 눈꺼풀을 깜빡이는 동작조차 잊은 게 분명했다. [언제나와 같은 풍경] 보고 있는 것은 그것 하나 뿐이었다. 해가 지고 달이 기우는 것조차. 깜깜하고 밝고...하는 명암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눈을 뜨면 언제나 보이는 것은 변함 없는 단 하나의 풍경 뿐이었으니까. "......." 숨소리가 깊이 퍼졌다. 메말라가고 있다...고 인정하게 된 순간. 동면하는 생물처럼 땅속 깊은 곳에서 잠을 자볼까...하는 발상까지 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땅한 굴이 없고, 파기엔 너무 힘이 든다는 사실을 깨닫곤 포기해야 했다. 지금은 그저 숨 한 번 내쉬는 것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늘게 숨을 이어갈 뿐이었다. "크릉." 움찔- 귀가 간질거렸다. 뭔가 있는 것도 같은 기분. 그것은 일종의 감각이었다. 사람의 감각이 분명 닿지 않는 곳일진데도 무언가 미묘한 변화를 감지한 게 분명했다. 고개를 돌릴 힘조차 없어 그저 멍- 하니 바라보기만 해야 했지만서도.... 그럼에도 죽어있던 뇌가 움직이며 작은 감각에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한 희소식이었다. 정말 죽어버리는 것보단 살아있는 게 나을 테니까. 시장 한 켠에서 언제나 자리 싸움에 치여 머리를 뜯기고, 또 어떤 때엔 기집애 주제에 피멍이 들어 오기도 하는. 그의 단 하나뿐인 여동생이 불같이 화를 내는 자신에게 언제나 웃으며 하던 말이었다. "이승이 좋은 거야. 살아있으니까 좋은 거야. 죽으면 뭐해? '개똥 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구 그러잖아. 살아있어야 뭐든 해볼 수 있는 거라고." 서른이 가까워져 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생선 비린내에 가득 휩싸여 사는 아이. 거친 손에는 그 흔한 로션조차 발라본 적 없고, 하루 종일 땡볕 아래 있느라 거뭇해진 피부엔 단돈 천원짜리 팩 하나 붙여본 적 없는....... [살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만 한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순박하고 진짜 세상 무서운 실리를 모르는 그 아이에게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들며 드디어 안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뻑뻑해진 눈이 모래라도 들어찬 듯 아파오긴 했지만. 정말 깜빡일 때마다 눈물을 쏙- 뺄 만큼 아팠지만. 오히려 그게 더 반가웠다. 눈물은 몸의 수분이 남아있었단 소식이니까. [아직 살아있다.] [아직은 죽지 않았다.] [아직 살아날 수도 있다.] 그런 몇 가지 가정만으로도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살아있다...고 하는 것에 감동하고픈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크르릉."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뭔가 고양이과 맹수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인위적인 울음 같기도 했다. 대체 무엇일까? 바르작거리는 것도 같고, 또 모래가 밟히는 것 같기도 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이 주변은 모래 투성이니까. 처음 이곳에 오게 되었을 때엔 사방이 이름모를 풀투성이에 동물은 하나도 살지 않는 무인(無人).... 아니, 무동(無動)지역이라는 것을 알곤 어찌나 기가 차던지.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었다. 대화 상대가 없으면 지식이 메말라가는 것이다. 그러다가는 자기 자신조차 잊게 되는 것이고. 또. 그런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먹을 게 없다는 점이었다. 그가 탐색해본 주변 지역은 온통 씁쓰름한 풀이거나 맛이 애매한 과일 뿐이었다. 더 깊숙이 들어가니 영화에서나 볼 법한 식인 식물이 입을 쩍- 벌린 상태였다. 그 식인 식물에 기가 질려 그 뒤론 그저 구조의 손길만 기다리게 되었다. 바다마저 깨끗해 물고기 한 마리 없는 곳. 그가 있는 곳은 분명 지구 과학의 손길이 닿지 못한 무인섬이었다. 그가 처음 바다에 나온 것은 여동생을 위해서였다. 남자라곤 정말 자신밖에 모르던 누이 - 이름도 진순이라는 순박해 보이는 그 아이 - 가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며 소개한 그 남자. 이름이 뭐였더라? 아마도 호...뭐시기 어쩌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여튼간에 이름조차 돌아서서 잊어버릴 만큼 재수 없어 보이는 사내였다. 시장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던 그 착한 여동생을 짝으로 주기엔. 정말 뭔가 꺼림직한 느낌이 드는 사내였다. 돈도 꽤 있는지 어금니 한 켠에 번쩍이는 금을 달고선 씩- 하고 웃어보이는데.... 순간 소름이 쫙- 돋으며 '이놈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형적인 사기꾼의 돈 감지 레이더가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 좋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동생을 농락하곤 꼼짝없이 부려먹을 속셈이 보여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그래서 그렇게 '싫다, 싫다. 절대로 저 사람은 안 된다.' 라고 못을 박아 두었건만. 끔찍이도 아껴온 여동생은 이미 놈의 손아귀에 농락당해 넘어선 안 될 선까지 넘어 허락을 요청해 왔다. 이미 다 익은 밥이었던 것이다. 비틀린 눈으로 보니 세상은 전부 비틀려 있었다. 해외로 나가 결혼식을 한다는 말에는 욕지거리가, 그 비용 중 거의 대부분은 여동생이 집을 사려고 모은 적금으로 해결했다는 말에는 성질머리가. 정말 말도 없이 불툭- 튀어나왔다. 벌써부터 제 욕심 챙기기에 바쁜 놈이니 평생의 꼴이 어떨 지 눈에 선했다. 그래도 식장에서의 동생은 참 예뻤다. 여자는 결혼할 때 웨딩 드레스 입은 모습이 제일 예쁘다고. 정말 그가 보기엔 눈이 부실 만큼 예쁜 모습이었다. 결혼식 중간에 자리를 차지한 하객들이 수근대는 소리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어머~! 신랑, 정말 훤하게 생겼다. 그에 비해선 신부가 너무 수수하지?' '저게 수수한 거니? 촌스러운 거지.' '뭐, 복고풍이라잖아. 사람도 복고풍 되지 말라는 법 없지 않겠어?' 골 빈 여자들의 소리라고 자위하면서도 억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따위 평가나 받을 아이가 아닐텐데. 그렇게 화가 치밀다 속상하고 서글퍼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자신의 뒷바라지 걱정만 아니었다면 저 아이도 저런 혹평을 받을 만큼은 아니지 않을까. 하고.... 결국 죄는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자책까지 하게 되자, 그는 말없이 결혼식 도중에 뒷걸음질 쳐 버렸다. 죄인처럼 느껴지는 자신도 싫을 뿐더러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도 싫었다. 겨우 열 여섯, 열 둘 밖에 안 되는 애들을 버리고 도망친 부모가 원망스러웠던 적은 많았지만 자기 자신을 원망해보긴 처음이었다. 필리핀 어딘가의 무슨 섬...이라고 들은 결혼식장은 정말 바로 앞에 파란 바다가 펼쳐진 그림 같은 곳이었다. 결혼식장을 나와 도망치듯 섬을 둘러보다 붙잡는 여동생의 손길도 뿌리치며 제일 먼저 섬을 나왔다. 커다랗다고 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사람 타기엔 꽤 큼직한 느낌의 배를 타고, 몇 명의 여성들과 선원 두 명, 선장 하나만 탄 10명 남짓의 배가 출발할 때까진 그저 아픈 속만 아우를 뿐이었다. 시원스런 바다에 고개를 두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울한 기분을 풀고 싶어서였다. 등 뒤에서 누군가 그의 등을 밀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그랬더라면 그럭저럭 육지에 도착할 즈음이 되어 기분이 풀어져 있었을 지도 몰랐다. 대충 그도 기분이 풀려가며 '그래. 그 애만 행복하다면 사기꾼이든 뭐든 어떻겠어.' 하고 수긍하려던 참이었으니까. "왁!!!" "으아아악!!!" 바다만 바라보고 있던 참이라 전혀 긴장이 없던 터였다. 자기들끼리 뭉쳐 뭐 그리 즐거운 일이 있다고 꺄르륵 꺄륵- 신나게 웃어대던 여자들 중 한 명이 다가와 그의 등을 밀어 버렸다. 방심하고 있던 그는 그 어떤 안전 장치도 없이. 정말 꼼짝 없이 바다에 떨어져야 했다.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사내 치곤 우습게도 수영을 못하는 그였다. 물에서 노는 건 거부감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수영만큼은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그가 그렇게 취약적인 부분에 닥쳐 팔을 허우적대고 있는데도, 배 위에선 그 어떤 구조의 손길도 닿지 않았다. 여자들의 꺄르륵- 대는 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푸학! 푸하~!! 살려...풉!! 살려 줘!!" '저게 수수한 거니? 촌스러운 거지.' '뭐, 복고풍이라잖아. 사람도 복고풍 되지 말라는 법 없지 않겠어?' 어째서인지 그 순간에 떠오른. 여동생이 받았던 비난의 목소리들. 그것은 자신에게 들려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마도 그런 취급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살려...!!!" 점점 멀어지는 배의 후미로 한 사람의 기다란 머리칼이 흩날린 것도 같았다. 여유롭고 풍요롭게.... 어떻게...어떻게......? 사람을 바다에 밀어넣고서도 어떻게 그럴 수가......!!! "사...려......." 촤악- 파도가 덮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크르릉." "아......." 오랜만에 입밖으로 튀어나온 목소리는 수분 부족으로 잔뜩 갈라져 있었다. 귓가를 지나쳐 간 으르렁대는 소리가 드디어 확연하게 들려왔다. 분명 맹수과 짐승의 끓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설마 여기서 맹수 같은 것에게 잡아먹히는 건 아니겠지? 한 켠으로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살아있다.'고 정신을 차렸는데 그 순간에 죽음이라니. 그것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제일 무서운 병이었다는 호환의 방식으로. 물리면 약도 없다던데 괜찮을까. "흐으......." 숨소리가 너무 거칠었다. 정말 겨우겨우 살아있는 인간의 목소리였다. 이렇게 보면 호랑이 같은 맹수에게 잡아먹히든 아사하게 되든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은데....... "그......." 그래도......살고 싶어. 꼼지락대며 손가락 끝부터 안간힘을 다해 움직이자 크릉대는 소리가 발끝에서 느껴졌다. "무...." 대체 뭐가...? 콰드득- "끄!!!" 순식간에 안구로 핏줄이 몰려섰다. 발끝에서 느껴지는 화끈하는 감각에 온몸의 신경이 필사적으로 곤두섰다. 비명도 안 나올 만큼 끔찍스러운 상태의 목에서 가래끓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 발끝부터 먹어치우려는 걸까? "흐......." 정말 죽는다...는 생각이 그제야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아니, 그것 외의 다른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죽는다.] [죽을 지도 모른다.] [죽게 될 거다.] "으...." 대체 뭐야? 뭐가...대체 뭐가 여기 있는 거야! "흐.... 흐으......." 파랗게 질린 얼굴과 달리 핏발이 선 눈에. 그가 이 자리에 누운 뒤 처음으로 주변 풍경 아닌 다른 것의 모습이 보였다. 거칠게 잘려나간 머리칼과 검은...? 아니, 갈색이라 해야 될 지 구리색이라 해야 될 지 애매한...하지만 굉장히 건강해 보이는 피부색. 오똑한 선을 가진 코와 그냥 바라보고 있으면 혼을 빼앗길 것 같은 두 개의 눈동자. 그리고....... 그리고 턱선이 젖을 만큼 흥건하게 흘러내리는 선혈이 묻어나는 붉은 입술. "흐...힉!!" 방금 전까지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힘들었던 것을 잊은 그는 팔을 버둥대며 기었다. 다리의 감각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크릉." "으아아악!! 저리 가! 싫어!!!" 질겅대는, 혹은 아득아득거리는 소리가 그의 귀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저것'은 방금 그의 발끝을 잡아먹었다. "크르릉...." "싫어! 가!! 으아~~~!!!" 버둥대는 그의 허리로 커다란 팔이 쑥- 들어왔다. 그리곤 마치 타잔이라도 된 것처럼 숲속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글북에 나오는 늑대 소년 모글리가 아마도 이렇지 않았을까? "놔!! 놔아~!! 끄아악!!" 까드드득- 버둥대며 서툰 헛손질로 계속 여기저기 두들겨대자, '그것'은 덥석- 하고 그의 팔뚝을 물어 뜯었다. 그리곤 나무 둥치 아래에 앉아 입주변의 핏물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인간답지 않게 송곳니의 발달이 잘 되어 있는지 뼈까지 아득대며 씹어먹었다. "끄...흐......!!" 그는 울음을 터트렸다. 불에 타들어가는 것처럼 화끈대는 감각이었다. 지진 상처에 소금물을 끼얹은 것도 같았다. 발 끝과 팔뚝의 상처. 특히나 팔뚝은 직접 그 뜯기는 모양새를 두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발의 상처는 아프지 않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상세를 보지 않아 그 때의 공포가 오히려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으...흐......." 남자는 함부로 울면 안 돼...라고. 부모님이 도망쳐 버렸단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그렇게 말했던 여동생. 평소엔 그 말이 진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굶어 죽는 것도 아니고. 맹수한테 물려 죽는 것도 아닌 같은 사람에게....... [식인종에게 잡아먹혀 죽다니!!!] 톡- 토옥- "으...응......." 입가에 배어드는 물기에 본능적으로 혀끝을 열었다. 그 잠깐의 틈새일텐데, 후두둑- 하고 달콤한 즙이 입안으로 떨어져 그의 타는 목줄기를 씻겨냈다. "....... ...으아!!" 흘긋 눈꺼풀을 들었다가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아득히 먼 꿈처럼 흐릿한 얼굴. 꿈이었으면 싶은 '그것'이 바로 앞에서 생생하게 숨쉬고 있었다. 한 손에는 토끼...처럼 보이는, 아직도 팔딱거리는 짐승을 손에 쥔 채. 그것은 아직도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는데, 그의 입안에서 비린내가 나는 걸 보면 방금 마셨던 달콤한 즙이 저것의 피였던 듯....... "흐!!!" 자신이 동물의 생피를 마셨단 결론에 다다르자 그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버렸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얼굴이었다. "크르...." 갸우뚱- 기울어지는 고개. 정글북의 그 모글리 같았다. 개구리...라는 뜻의 모글리. 그리고 정말 개구리처럼 사람인 주제에 무릎을 세우고 네발로 앉아있는 '저것'도 모글리. 아니, 어떻게 보면 그보다도 사정이 좋지 않았다. 만화로 봤던 모글리는 동물 가죽으로 중요 부위를 가리기라도 했었지. '저것'은 아예 알몸 그 자체였으니까. 푸석한 머리를 꼬리처럼 흔들거리는 등이 그나마 조금 가려지는 부분이었다. '저것'이 움직일 때마다 다리 사이의 성기도 달랑달랑 움직였다. 공포로 몸이 떨리는 와중에도 그곳으로 시선이 갈 만큼. 남자로선 정말 존경할만한 물건이었다. 굵기와 색과 모양. 모든 것이 완벽한 한 장의 누드화였다. 완벽한 여자를 비너스에 비교한다면 완벽한 남자...는 무엇에 비교해야 할까. "크릉?" 갑자기 그 물건이 발딱- 몸을 세웠다. 안 그래도 그걸 바라보고 있던 참이라 그는 '그것'의 물건이 발기하는 모양새에 움찔- 하고 눈을 치켜떴다. "....... 아?" 그러고 보니....... "어...." 무언가의 사실을 깨닫고 몸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조금은 놀라운 눈빛으로 '그것'을 향했다. 빡빡했던 눈의 이질감은 사라지고, '저것'이 물어뜯은 팔과 발끝은 뭔가 커다란 잎사귀 같은 것에 감싸여 있었다. 엉성한 솜씨에 아직도 얼얼하게 감각이 마비된 느낌을 주긴 했지만. 어쨌거나 치료를 해준 것 같기는 했다. "...저어......." 정말 식인종이라면 말이 통할 리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말을 걸자 크릉. 하고 가래 끓는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인간의 목으로 내는 것치곤 참 특이하다 싶은 목소리였다. 판소리를 하는 명창들의 목은 항시로 쉬어터진 목소리라던데.... 그보다도 훨씬 탁하고 상대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소리였다. 정말 듣는 순간, 야수에게 몰린 듯 몸을 움츠리며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그가 동정을 살피자 '그것'은 자신이 우위에 섰다는 걸 깨달았는지 씨익- 쪼갠 웃음을 지었다. 저 푸석한 머리라던가 전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은 모양새만 아니라면....... 몸매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톰 크루즈나 여타의 꽃미남 육체파 배우들에 뒤지지 않는 모양새가 나올 사람이었다. 왜 톰 크루즈나 여타의...라고 물으면. 그 순간에 하필 떠오른 게 띠리링~ 띠리링~ 하는 미션 임파서블의 배경음 뿐이라는 이유였다. 황당맞아 보여도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면 두뇌가 제멋대로 노는 상태일 때도 있는 법이다. 정신적 공황 속에서 그나마 톰 크루즈라도 떠올릴 수 있던 게 어디인지. 어쨌거나 그렇게 한 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려 웃어버린 '그것'이 어슬렁대며 네 발로 기어왔다. 슬금 올라타는 자세 또한 먹이사슬의 우위에 서는 피라미드 정점의 존재와 같았다. 사자나 호랑이...라기보단 미끈한 흑표범 한 마리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올라타는 '그것'의 행동 와중에 달랑거리던 물건이 그의 허벅지를 쓸고 올라갔다. 모래 투성이인 바지 한꺼풀을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닿아선 안 될 것이 닿은 기분이라 그는 몸을 떨었다. 찔끔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저...저기.... 저기요...오......?" "크르릉." "....... 저어~...?" 뭔가 '이것'의 상태가 이상했다. 자기 물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그러다 갑자기 퍼뜩 고개를 쳐들곤 뭔가 알았다는 듯 혼자 벙글벙글 웃어 버리는. "뭐...으악!!!" 갑자기 내려서선 두 다리를 번쩍 들어올리는 '그것'의 행동에 그가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푸다닥- 하고, 그로선 분명 꽤나 깊이 들어가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새가 그의 비명소리에 놀라 근처의 숲속으로부터 날아올랐다. 놀라면 일단 날아오르는 습성을 보이는 게.... 정말 어쩔 수 없는 새대가리가 확실한 듯했다. 그의 두 다리를 번쩍 들어올린 '그것'은 이내 한 손을 내렸다. 그리곤 민망스럽게도 그의 엉덩이 가운데를 더듬어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캬앙~?" 뭔가 다시 모르겠다는 투. 대체 무얼 생각하고 있는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놈은 다시 알겠다는 듯 함박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안으로 휘었다. 웬만큼 손톱 관리를 한다는 여자들도 피해갈만큼 두텁고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그 손가락으로 놈은 그의 바지를 찢어냈다. "헉! 아퍼!!!" 바지가 찢겨나가는 과정에서 살이 뭉텅이로 베이자 화끈- 아려오는 신경 세포의 비명이 그의 입을 통해 튀어나왔다. 흘러내리는 피를 혀끝으로 할짝거리고 쪽쪽 빨고.... 정말 짐승처럼 행동하는 '그것'의 행동에 어째서인지 그의 물건도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다. 올해로 딱 서른줄이 되어 아직도 튼튼하다 생각해온 그였다. 하지만 확실한 비교급 - '그것'의 물건 - 을 두고 보니 자기 자신이 하도 초라해 보였다. 발기를 한다 해도 저만한 물건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제 상징으로 창피를 당하는 기분에 그가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좁혔다. 그러다보니 원치 않게 '그것'의 머리를 다리로 감싸게 된 그가 화들짝 놀라 다시 다리를 벌렸다. 여전히 쓰라릴 정도로 그의 피에 집착하며 허벅지를 핥아대던 '그것'은 고개를 살짝 드는가 싶더니 더 깊숙히 머리를 박았다. "으아!!" 더 깊숙히.... 더 아래로. 자그마치 그의 항문에 닿는 혀의 느낌은 그를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 하지 마!" 고등학교 때. 어울리지 못하면 '따'를 당하게 될 거란 두려움으로 그는 두어 달 정도. 학교의 불량 서클과 어울린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녀석들과 서로 자위를 해준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그저 포르노 비디오를 보며 서로의 물건을 만져주는 수위였다. 감히 항문에 이르는 성행위는 아직 솔로인데다 여자 경험도 없는 그로선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싫어!!!" 자신이 더럽혀지는 듯한 기분. 결단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발기하는 물건의 뻐끈함에 몸의 어딘가는 나른해지는 것도 같아서. 그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그는 울음을 터트렸다. "흐어어어엉~!" "캬릉?" 그의 울음에 잠시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들었나 싶었던 '그것'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곤 왼손으로 제 물건을 쥐었다. 푸욱- "흐, 끄아아악!!! 아퍼!!!" 바닥을 긁고 버둥대며 넓은 잎으로 감싸여진 팔뚝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몸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관통 당하는 느낌은 결코 그가 이겨낼만한 속성의 것이 아니었다. 비명을 지르고 버둥대며 발악했다. 끔찍한 고통이 어서 사라지기만을 바라며 울부짖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결국 띵- 하고 시야가 아득해져왔다. "시......." 싫어. 이런 건. 정말 싫어. "흐...." 비명을 지르느라 깔깔하게 갈라진 울음소리. 흐릿해져만 가는 의식의 눈끝으로 '그것'이 무언가를 아득아득 씹어먹고 있는 게 보였다. 짐승과도 같은 그 행위 도중 몇 번쯤 의식을 잃었던 그는 눈을 깜빡이며 최대한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어쩐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아서였다. 까득까득- "......!!!" 뼈가 이에 갈리며 부서져 내렸다. 살뭉텅이와 함께 아무렇지도 않게 뼈를 씹어먹는 '그것'의 입가에, 여동생이 단백질 덩어리라고 농담 삼아 말하던 것의 둥근 모양새가 보였다. 발목 근처가 화끈거리는 게 그제야 느껴졌다. "......." 한 순간의 충격 때문인지 순간, 아찔! 하고 시야가 핑그르르- 회전을 했다. 흐려지는 의식 속으로 그는 끝까지 '그것'이 씹어 삼키고 있는 살덩어리를 바라보았다. "흐......." 다신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어. 다시는 '저것'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힘겹게 진실을 인정하며 그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그것이 씹어 삼키는 물건은 그의 발 한 쪽이었다. 벗어날 수 없어......다시는. ============================================= 이게 뭐야? 정말 끝이야? ......라고 하시는 분들. 네. 끝 맞습니다. 맞구요...-_-; 어제 저녁에 아는 작가 언니와 잡담을 나누다 불쑥 튀어나온 주제로 급조된 단편입니다. 쓰는데 한 다섯 시간 걸린 듯 하군요...-_-;;; 쓰다가 자꾸 머릿속 내용이 늘어나서 이 정도로 끊었습니다. 외전을 원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외전 쓰겠습니다. 대신 그건 다음 일요일에...=_=;; 왜...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갑작스럽게 취직을 하게 된 이유로 월요일 새벽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꼼짝없이 일에 묶여 있어야 하거든요. 집에 와서도 평일엔 그냥 디비져 자고 주말엔 다음 주의 준비를 해야 되서...=_=; 네. 고런 이유로 다음 주 일요일입니다.(물론 원하시는 분이 있을 때에 한해서...겠지만 말입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 되세요. 사랑합니다^-^ [단편소설] 개자식(식인종 외전) 미니메이 (HOME) 수정/삭제 +스크랩하기 (HIT: 867/VOTE: 40) 2. "하악...하악......." 성적 쾌락에 들뜬 목소리가 거칠게 숲을 누볐다. 숲은 전처럼 그 소리에 놀라 새가 날아오른다거나 하는 일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익숙해진 일상이기 때문이었다. "하...아아~......." 그 일이 일상처럼 되어버린 것은 숲 뿐만이 아니었다. "훅!!" 한 순간, 코를 찌르는 비린내에 그가 잔 경련을 일으키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낮은 신음이 그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흐......." 그가 '그것'의 특식 겸 성적 쾌락의 노예가 된 지도 벌써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딱히 날짜를 세기 위해 세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하루 걸러 한 번씩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어 피를 핥거나 몸의 살점을 조금씩 뜯어먹기 때문이었다. 매일 같이 범해지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산 채로 잡아먹히는 것만은 잊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범해지는 것이 덜 고통스러웠다. 그냥 자존심만 버려버리면 되는 거니까. '그것'은 색욕이 머리끝까지 올라 있을 때엔 그의 몸을 뜯는 둥의 식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뒤론 '그것'의 눈빛이 심상찮다 여겨질 때 얼른 다리를 벌렸다. 창녀 같은 행위라고 생각하면서도 잡아먹히는 것보단 낫다고 자위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가 다리를 벌리면 그것은 식욕 대신 색욕의 눈을 번뜩였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파지긴 하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상처가 아니라서 그런지 훨씬 더 견딜만 했다. 그가 나름으로 '그것'의 곁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삶의 방식. "끄...하...!!!" '그것'이 포효를 내지를 때면 그는 비명을 질러야 했다. 몸안으로 들어오는 이물질의 감각도 그렇지만 그 물건의 사정액도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누가 짐승 아니랄까봐 정력도 짐승 같아선 액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장벽이 꿰뚫릴 것만 같은 불안한 자극을 받아야 했다. 행위 도중의 느낌도 최악. 그 끝도 최악. 오늘도 자진해서 세 번이나 다리를 벌려 받아들인 통에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력적인 '그것'은 쾌락에 굶주린 눈을 번뜩였다. "아...안 돼. 이제......."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는 그를 향해 '그것'이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주제에 눈치는 있다는 건지, '그것'은 그와 생활하게 된 지 사흘 만에 '안 돼.' 라는 말의 뜻을 알아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죽을 것 같다...고 느낀 시점에서도 잘 물러나지 않을 때나 통하는 수단이었다. 그 이전엔 아무리 안 돼! 라고 딱 잘라 말해도 아예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무시해 버리기만 할 뿐. 결코 들어주지 않았다. 자기 채울 욕심은 다 채우면서 배부른 뒤에야 그를 돌볼 생각이 드는 생물. '그것'의 눈을 향해 물끄러미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눈이 번들거리자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 '그것'은 공포의 상징이었다. 야금야금 물어뜯긴 몸은 변화했다. 조금씩 메말라 가는 것도 그러했지만 묘하게 상처의 회복 속도가 빨랐다. 열대의 기후 속에 곪아 터질만도 하건만, 더러운 치아에 물어뜯긴 상처도 한숨 자고 일어나 보면 말끔해지곤 했다. 먹혀버린 발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좋으련만. 어째서인지 그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쉽기도 하고, 자신이 불구가 되었다는 것이 무섭기도 한. 그가 겪고 있는 현실의 일부분이었다. "크릉." '그것'은 인간의 말을 통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가 말을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좋아해서 뭔가 말을 꺼내면 주의깊게 귀를 기울였다. 관심이 있어 보이는 투의 행동이었다. 또 '그것'은 하루 두 번의 사냥을 나갔다. 대부분 정체 모를 생고기가 주식이었는데, 화식(火食)이란 것을 전혀 알 지 못하는 탓에 며칠 간은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에 엄두내질 못했다. 게다가 성격이 급하기도 해서 그가 식사하지 않는 날이면 '그것'은 크릉대며 화를 내기 일쑤였다. 그러다 그가 과일은 무리 없이 먹는 것을 보고 식용 과일을 가져오게 되었다. 아니었다면 아마 또 다시 굶어 죽어 가는 사태가 발생했을 지도. 별식처럼 이틀에 한 번만 그의 몸에 상처를 내는 '그것'이 부린 첫 날의 행패로 잡아먹힌 팔뚝과 발 한 쪽. 불균형하게도 '그것'은 그의 오른쪽 팔뚝과 발을 잡아먹었다. 상처는 금방 나았지만 발이 사라진 탓에 걸을 수는 없었다. 절실하게 느껴지는 발의 부재에 비틀대며 일어서려다 넘어지거나 엉덩방아를 찧기만 할 뿐, 기어다니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실상 그로서는 목숨 붙인 채 살아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아...하아...." '그것'이 사냥을 나간 사이, 그는 스스로 기어다니며 주변을 맴돌았다. 한 쪽 발이 잘려나간 다리론 '그것'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인 터라 너무 멀리 움직여 괜한 기운을 빼는 짓은 하지 않았다. 발이 잘려나간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그가 깨달은 것이었다. '그것'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가 영역을 벗어나려다 잡혀 들어와 왼쪽 다리까지 뜯어먹힐 뻔한 사건에서 그는 깨달아 버렸다. 그것이 인간이라고 보기엔 심각하게 빠른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무 위를 날듯이 날아와 단 열 걸음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되잡혀 온 것도 그렇지만. 그 뒤, 하루 종일 놈의 성욕 배출구 행색을 해야 했던 기억만은 다시 떠올리기도 무서울 만큼 끔찍했다. "하아......." 가볍게 숨을 고르며 나무 둥치에 몸을 기댄 그는 '그것'이 침구 대용으로 가져온 넓은 열대식물 잎사귀의 위에서 바르작거렸다. '그것'이야 바닥이든 어디든 아무렇지 않게 잠들 수 있었지만, 입식 생활에 익숙한 그에게 맨바닥의 생활은 바로 감기를 불러왔다. 온몸으로 호소하는 근육통과 콜록대는 기침소리.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것이 한 가득 모아온 잎사귀가 지금의 그것이었다. "하아~...." 운동을 마친 그가 고개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언젠가 잡아먹힐 운명이라고.... 정말 그렇게 모든 것에 관조적인 입장을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도저히 그렇게 만사에 손을 놓아버릴 수 없었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라고, 게으른 생활을 용납치 않고 살아온 몸이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잠시 몸을 뒤척이던 그가 낮은 숨을 내쉬었다. 그가 방금 생각한 것은 혼자 남게 될 때면 언제나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고민이며 상념이었다. 앞날을 생각할수록 막막하고 답답해지는 가슴. 아무리 삶을 포기할 줄 모르는 자세를 지니고 있다 해도 지금의 막막한 심정 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살고 싶다...는 생각도 이젠 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 뿐이었다. 생물의 삶에 대한 본능 그 자체만으로 살아가는 생명체 같았다. "응?" 나무 밑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그가 등을 꼿꼿이 세우고 눈을 올려 떴다. 뭔가 커다란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을 들은 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식인 식물과 식인종도 있는 마당에 식인 동물이 없으리란 법은 없었다. 게다가 언제나 그의 곁에 있던 '그것'도 지금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를 지켜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 지켜준다...는 것에 아주 잠깐 위화감을 느낀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그것'에게 지켜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매일 같이 물어 뜯기고 성욕의 배출구로서 쓰이고 있는 주제에.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 무언가 위험 신호가 들려왔었다. 요 근래 들어 지나치게 좋아진 감 탓에 온몸으로 소름이 끼쳐 올랐다. 뭔가 일이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우지끈- "그르르르." 뒷목이 서늘해져왔다. 그의 뒷편에서, '그것'이 내는 것과는 다른 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모르게 긴장으로 몸을 굳힌 그가 팔과 엉덩이에 힘을 주어 몸을 움직였다. 뒤를 돌아 눈을 마주치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것'과 같이 산 한 달 여의 시간 동안. 무서운 것과 눈을 마주치면 찾아오는 패닉 상태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앞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발목 밑을 완전히 뜯어먹힌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긴 했지만,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아닌 한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사람...이란 단어는 삶에서부터 유래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 것처럼 사람은 본능적으로 삶을 추구하는 존재였다. 그 또한 틀리지는 않아서.... 아니. 오히려 더욱 더 강한 사람이라서. 그래서 삶의 의미조차 모조리 상실하고난 뒤인 지금에도 살기 위해 아둥바둥거리고 있었다. "허억...헉...." 정말 느릿한 속도였지만 그로선 최선을 다한 움직임이었다. 나름으로 운동을 하고 난 뒤라 지쳐있는 상태의 몸이 뜻대로 100미터를 15초 내에 주파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르르륵." 소리가 바로 뒤까지 다가와 역겨운 숨을 뽑아냈다. 한 순간, 머리가 띵해질 정도의 냄새에 비틀거릴 뻔했던 그는 '이제 죽는 구나.' 싶어 마른 침을 삼켰다. 때맞춰 '그것'이 나타나 주지 않는다면 그에게 구원은 없었다. 적어도 '그것'은 그를 죽일 것 같진 않아 보이는 존재이니까. "그르릉!!" 화악- "윽!" 갑작스럽게 등이 불에 데인 것처럼 아파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뒤로 돌리자 집채만한 곰이 그를 향해 시뻘건 눈을 번뜩이고 있는 게 보였다. "흡!!" 정말 눈곱만큼의 거짓도 없이 집채만한 곰이었다. 얼굴만 해도 그의 가슴팍보다 더 커보이는. 그 '우루사 삼촌'이 그가 시선을 돌리기 무섭게 크워어어어- 하고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공포를 배가시키기 딱 좋은 형태의 움직임이었다. 그대로 내려누를 기세에 깜짝 놀란 그가 몸을 움츠렸다. [죽는다!!!] "......." 어, 어라? 심판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건만, 어째서인지 변화가 없었다. 설마 너무 순식간에 죽어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정말 벌써 죽어버린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조용했다. "끄, 끄우~...." "아...?" 뭔가가 죽어가는 듯한 신음소리에 눈을 껌뻑이다 고개를 든 그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끄우우우." 그 집채만한 곰이 '그것'에게 목덜미를 잡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덩치만 봐선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광경이었다. 곰의 목줄기에 손을 박아넣은 '그것'의 눈이 번뜩인 순간, 푸화악- 하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곰이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나무를 자르고선 "넘어간다~!" 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쿠웅- "......."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닐 진데도 어쩐지 입이 벌어져 다물리지가 않았다. 그는 입을 딱- 벌린 채 쓰러진 곰의 커다란, 정말 그의 얼굴보다 커다란 발바닥이 눈 앞에 보였다. 곰의 어깨에 올라타 목줄기를 움켜쥐었던 '그것'이 고개를 들자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저런 커다란 곰도 단번에 죽이는 괴물이니 식인종을 할만도 했다. 식인의 습성이 있기 때문에 강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의 시선이 잘려나간 발목으로 향했다. 둥글게 마모되어버린 발목. 그 밑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불구의 몸이었다. 나도 사람의 몸을 먹으면 저렇게 강해질까? "......." 아서라.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잠시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해본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젓는 고갯짓에 비릿한 피냄새가 풍겨왔다. '그것'이 그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것'의 손은 아직 곰의 피로 흥건한 상태였다. 그 손에서 나는 비릿한 혈향에 입을 틀어막은 그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시선을 마주하기 무서운 상대이기도 하고, 또 기분 나쁜 존재이기도 했다. 이미 '그것'이 그를 죽음에서 구해주었다...라는 사실은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린 상태였다. 배반적인 그의 태도를 이해 못한 것인지 '그것'은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다 그의 등에 난 상처를 보곤 눈을 껌뻑거렸다. 그리곤 그 상처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할짝- "윽!!" 예고없이 다가온 혀가 상처를 훑고 지나가자 또 한 번 불에 데인 듯한 느낌이 그의 전신을 스쳐 지나갔다. 핏물이 흘러내릴 등줄기에 닿는 혀끝으로 타액의 뒤섞임이 느껴졌다. 분명 깊게 파였을 등이 이질적인 액체의 '닿음'으로 쓰려왔다. "흐...!!" "크릉. 크응~...." "아, 안 돼! 하지 마!" 무언가를 원하는 듯한 게슴츠레한 소리에 그가 몸을 와락- 웅크렸다. '그것'이 원하는 것은 그의 피...이거나 아니면 성욕의 해결일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먹잇감을 앞에 둔 사자처럼 어슬렁어슬렁 그의 주변을 맴돌다 그의 남아있는 왼쪽 발을 덥석 입에 담았다. "윽!" [잡아 먹힌다!] "....... 아?" 시간이 지나도 그가 기다리던 통증은 오지 않았다. 그저 미끈거리는 점액질이 자신의 발끝에 번져가고 있다는 느낌이 있을 뿐이었다. 슬그머니 외눈을 뜨고 바라보자 눈의 바로 앞에서 '그것'이 씨익- 한 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읏!!" 놀림 당했다. 미물처럼 살아온 '그것'에게 사회적 동물로 살아온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어슬렁대다 이번엔 그의 오른손으로 제 손을 뻗어 움켜쥐었다. '이번에도 당할 쏘냐!!' 라고 부릅 뜬 눈으로 시선을 마주한 그의 눈에 점점 핏물이 번졌다. 콰직- "......끄...아아아아아~!!!" 철저히 그를 방심하게 만든 '그것'은 이번에야말로 그의 신체 일부를 집어 삼켰다. 잠깐의 순간에 오른손의 손등을. 그리고 약지와 소지 - 네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 - 를 잃어버린 그의 눈에 핏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목을 뜯어먹힐 때도 그랬지만 지금 또한 통증은 전신을 뒤흔들고 있었다. 어깨부터 손끝까지 모두 마비되어 버린 듯했다. 꿀럭대며 쏟아져 나오는 핏물이 또 한 번 그에게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흐...으.... 아우....... 아...." 아픔이 너무 강해 통증이 마비되어버린 탓인지, 살점이 떨어져나간 부분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었음에도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무서워. 무서워. 정말 싫어. "흐...." 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 "으......." 집에 가고 싶어. 이런 악몽 뿐인 곳 따윈 싫어. "크릉." "히익!!!" '그것'의 낮은 울음소리에 그가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물리며 도망쳤다.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려는 생각 때문인지 손바닥으로 기듯 하는 통에 오른손의 피가 전부 땅으로 스며들었다. 이젠 '저것'의 숨소리조차 듣고 싶지 않았다. 다량의 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느라 오른손의 상처가 욱신거리고, 흙범벅이 되었지만 그는 움직임을 멈추려 들지 않았다. 그저 벗어나야 한다는 고정된 시각의 내용만 머릿속을 때리고 지나갈 뿐이었다. 덥석- "으아아아~!!!" 단단한 팔에 허리를 잡히며 쓰러진 그가 버둥거렸다. "싫어~!! 하지 마! 개 자식! 싫어~!!! 싫단 말이다!! 내 말 좀 들어 처먹으라고!!" 짜악- "헉!!" 버둥대며 이리저리 팔다리를 휘두르던 그의 몸이 일순 정지된 비디오 테이프처럼 멈춰버렸다. 스쳐지나간 따귀에 '그것'의 뺨이 벌겋게 올라왔다. 게다가 요 한 달 동안 한 번도 깎아준 일 없는 손톱이 스치며 긁힌 자국까지 남겼다. 얼굴의 손톱 자국은 평생 흉터로 남는다던데....... "크르릉." "아...안 돼. 시, 싫어!!" 그처럼 잠시 멈칫했다가 제 뺨으로 손을 움직인 '그것'의 눈이 붉은 빛으로 번뜩이자, 그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허우적거렸다. 크릉크릉- 하고 위협적인 울음소리와 함께 '그것'이 옷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그의 찢겨나간 셔츠를 잡아뜯었다. 첫 날에 바지를 절단내 버린 '그것'의 행동으로 결국 모든 옷을 잃어버린 그는 태초의 상태로 초췌한 얼굴빛을 보여야 했다. "크르르륵." 그의 가슴을 향해 느릿한 포즈로 입맛을 다신 '그것'은 '오른쪽 집착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의 오른쪽 유두를 깨물었다. 콰직- "아악!!!" 유두 주변의 살에 잇자국을 새기게 된 그의 비명이 숲을 가르자 오랜만에 숲속의 새들이 푸드득- 날아올랐다. 그렇게 적응이 되고도 또 날아오르는 걸 보니 확실한 새대가리인듯 싶은 놈들이었다. "흐.... 으악! 아아악!!" 그의 일생에 상상이나 해봤을까. 살점을 베어물고, 손톱으로 근육을 찢는 섹스따위. 끔찍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지독한 현실에 그는 차라리 죽어버렸으면...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말 제 스스로 죽을 용기만 있다면 몇 십, 몇 백 번을 죽어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윽...!! 끄...." 언제나 그렇지만 갑작스런 삽입은 이미 통증에 둔감해진 그의 전신을 경직하게 만들 만큼의 통증을 동반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간음 행위에, 이제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아 눈물만 뚝뚝 흘러내렸다. "으...흐...!!!" 질퍽이는 삽입과 흥분된 짐승의 신음소리가 그의 귀를 어지럽혔다. 빠른 움직임에 휩쓸려.... 개처럼 엎드린 채 등 뒤로 짐승의 물건을 받아들인 그의 몸이 바람 속의 나뭇잎처럼 흔들거렸다. 퍽퍽- 거칠게 박아대던 '그것'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 순간. "아악!" 내벽 안으로 침투하는 이질적인 액체에 장벽을 뚫리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악악대며 비명을 터트린 그의 몸은 그게 마지막 발악이었다는 듯 몸을 늘어뜨렸다. 여전히 그의 허리를 움켜쥔 채 사정의 여운을 만끽하던 '그것'은 몸을 숙여 그의 등에 자신의 가슴을 붙인 채 크릉크릉- 하고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포식자의 여유라는 건가. "...하!" 싫다고. 네게 짓밟히고 있는 난 싫단 말이다. "하하...." 웅크린 그의 몸이 힘없이 떨렸다. 쏟아지는 눈물을 닦느라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올렸더니 이번엔 피범벅이 되어버렸다. 엉망이야. 정말 너무 망가져 버렸잖아. "개자식." =================================================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아마 다음 주에도 또 한 편이 올라올 듯...-_- 이거야말로 격주연재라는 것?;; 네이밍 센스가 편협한 탓에 미치겠습니다...; 욕설 난무, 특이성 난무...-_-; 모두 즐거운 하루 되세요. 아, 그리고 위에 2...라고 되어있는 건... 제가 쓰면서 그렇게 쓰는 탓이지 식인종 2편이란 뜻이 아닙니다...OTL [단편소설] 짐승(식인종 외전2) 미니메이 (HOME) 수정/삭제 +스크랩하기 (HIT: 844/VOTE: 54) 3. 그가 그 냄새를 맡은 것은 해가 중천에 올라 점심 대신 먹고 있는 푸른 색의 과일을 섭취중인 때였다. 어디선가 퀴퀴한 썩은 내가 풍겨와 몇 번이고 킁킁거리던 그는 이내 그것이 꽤나 근처에서 나는 냄새라는 걸 깨닫고 추적에 나섰다. 의지할 것은 그저 이태껏 코감기 한 번 앓아본 적 없이 뻥- 뚫린 콧구멍 두 개 뿐이었다. "...우엑!" 냄새의 근원을 파악하려 애쓰던 그는 이내 자신의 겨드랑이 쪽으로 코를 향하다 비명을 토해냈다. 냄새는 그의 몸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으......." 생각해보니 이곳에 도착한 뒤론 내리는 비에 흠뻑 젖은 것 빼곤 몸에 물 묻힐 일이 없었다. 땀범벅이 되어 살아도 얼굴 한 번 씻은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하자면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지. "......." 우울해지는 기분이었다. 부모에게 버림 받은 자식이라고. 그런식의 놀림을 받지 않기 위해 무엇 하나 흠 잡히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왔다. 수도세를 내는 게 아까워 밤에 남몰래 주인집 수돗물을 받아와서라도 깨끗한 모습만 보여왔는데.... "하아...." 비가 온지도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지나 버렸다. 그 사이에 씻은 기억이 없으니 얼굴에 낀 때만 해도 밭고랑 하나는 만들 터였다. 그런 지저분한 꼴이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다니. 같은 '인간'이 없으니 자연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일 일도 없고, 또 꾸민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었다. "......." '인간'...이라....... '그것'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잠시 야성미 넘치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것'의 얼굴을 떠올린 그가 잠시를 참지 못해 풋- 하고 자조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도 '그것'의 겉모습에 속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인간이 아니야.' 짐승이다! 일분 일초가 아까운 통학 버스 속의 고3 수험생들처럼. 맨땅에 꾸벅꾸벅 머리를 박아가며 그는 그 사실을 머리에 새겼다. "크릉?" "아!!!" 그의 얼굴빛이 새빨갛게 변했다. 오늘 첫 사냥에 나갔다 돌아온 '그것'이 맨땅에 헤딩 중인 그의 모습을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제대로 쪽팔려버린 상황. 그나마 '저것'이 그가 한 행동의 의미 - 아무 의미 없는 행동임 - 를 모른다는 게 다행이었다. "....... 냄새 나. 씻고 싶어." 어차피 안 통할 말이란 걸 알면서도 그는 눈을 굴리며 '그것'에게 요구했다. 그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그의 말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건지 모를 '그것'은 그를 빤히 쳐다보다 갸웃- 하고 고개를 꺾었다. "씻고 싶어." 손바닥을 펴고 몸 전체를 쓰다듬는 시늉을 해도 '그것'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양쪽으로 번갈아가며 갸웃거렸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생물과의 생활은 이래서 힘이 들었다. "씻고 싶다고!!" 악에 바친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것은 주인에게 혼쭐이 난 똥개마냥 뻘쭘한 얼굴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사람 주제에 네 발로 걸어다니다니. 아니. 저건 사람이 아니야! 아니라구! 또 한 번 해버린 말도 안 되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그가 다시 답답하다는 표정을 하고, 이번엔 머리를 벅벅 문질렀다. 며칠을 감지 않아 쉰내가 나는 머리는 그의 손질에 의해 기괴한 화초의 모양을 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동충하초의 형태라 할 수 있었다. "씻고 싶다니까!!!" "크르릉." '그것'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비쥬얼만 봐선 톰 크루즈 형님의 뺨을 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으악!" 갑자기 한 팔로 그를 덥석- 끌어안은 그것이 영화에서의 타잔처럼 나무 줄기를 타고 나무 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얼기설기 엮어진 나무 덩굴을 타고, '그것'은 정말 용하다 싶을 만큼 자유롭게 올라가 나무 가지 위를 날아다녔다. 정말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모습이었다. "으아아~!!" 하지만 말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지, 일단 겪어보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기분도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건 그가 높은 곳을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고소 공포증은 아니라지만 나름 무서워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섬에 있는 나무들은 키가 오죽이나 커다란지 가장 무섭게 느껴지는 높이라고 했던가? 여튼 11미터 이상 되는 높이의 가지들을 번쩍번쩍 날아다니려니 떨어져 죽을까 무서울 지경이었다. 무작정 '그것'의 목을 끌어안고 비명만 질러댔다. "크흐흐흐...." "......." [인간?] 비록 건전한 웃음 같진 않아보였지만. 그래도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웃음소리였다. '그것'에게서 생긴 모양 이후로 처음 접하는 인간다운 면이었다. 언제나 짐승의 울음소리만 내던 '그것'은 자신이 어떤 웃음소리를 낸 것인지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의 정적. '그것'이 인간이란 사실을 처음 접한 기분이었다. '그것'이라 생각했던 존재가 '그 사람'으로 보였다. "......." 그는 조용히 '그것'의 가슴에 몸을 기댔다. 방금까지 느껴지던 어지럼증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것'의 체온이 느껴져올 뿐이었다. "......." 사람이구나. 사람...이었구나. 심장이 고요하게 가라앉는 느낌을 만끽하며 그는 이 섬에 온 뒤 처음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몸을 기댄 귓가에 전해져오는 따스한 인간의 체온이 그를 행복하게했다. 초췌하고 지친 모습 뿐인 미소라도 한 번 미소를 짓고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맥이 탁- 놓이며 지금껏 잡혀왔던 강박관념, 그리고 긴장이 실타래 풀리듯 스르륵- 풀어져 버렸다. 인간이구나. 풍덩- "으앗!" '그 사람'의 팔에 감겨 이동한 곳은 바다였다. 그가 처음 떠내려온 그 바다로 이동한 '그 사람'은 가차없이 그를 바다 위로 던져버렸다. 그리곤 그가 빠져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곤 캬르륵- 웃다가 그를 끄집어냈다. 처음 그가 이곳으로 오게 했던 계기라 할 수 있는, 그 이국 여성들과는 다른 상황 전개. "우...." 바닷물이 코 끝을 찡하게 만들었는지 눈물이 삐져나왔다. "흐......." "크릉?" "우...흐으......." 계속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아내느라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것은 오랜만에 몸을 적신 바닷물이 너무 짠 탓이었다. "흐으.... 욱...으흐흑......." 할짝- ".......?" 무언가 뺨끝의 눈물을 핥고 사라졌다. 훌쩍이며 고개를 들자 '그 사람'이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우으....... 으...허어어엉~!!!" 한 순간에 울음을 터트리며 그는 '그 사람'을 끌어안았다. 목을 끌어안고 펑펑 울어대자 '그 사람'이 낑낑대며 손을 허둥대다 그의 무릎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허어엉~!!" 그것은 그와 '그 사람'이 만난 지 한 달 보름 만의 첫 포옹이었다. "아, 안 돼!!" 그가 재빨리 커다란 잎사귀를 들어 몸을 가리자 '그 사람'이 불퉁 맞은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왜?" "그...게......." 재빨리 대답을 하지 못한 그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것'을 '그 사람'으로 인식한 뒤부터 그는 '그 사람'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워낙 짐승의 소리밖에 낼 수 없는 지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석 달의 시간을 허비하고나니 간단한 의사 표현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의사표현이라는 게 "먹이"='그'를 호칭하게 되었다는 정도여서 문제랄까. 게다가 이렇게 "왜?" 라는 질문 공세를 해오면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그 짓'을 하려다 만류하려 하면 더더욱. 대체 이 행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가장 무서운 건 잡아먹힌다는 문제였다. 아직도 식인 습성이 동하는 건지 '이 사람'은 그가 빈틈을 보이고 있을 때마다 야금야금 상처를 내서 피를 강탈해갔다. 영악하게도 그가 주시하고 있을 땐 아무것도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다가 말이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먹이, 맛있어." 그가 하는 말을 해석하자면 '네가 맛있으니 아껴서 두고두고 잘 먹겠다.' ...는 말의 줄임이었다. "하아~...." 이 짐승 같은 인간을 어째야 할까. 하루에도 머릿속이 터져라 생각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서질 않는 물음이었다. 조금씩 인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 같고, 또 짐승 같았다. 아이처럼 기어다니고, 짐승처럼 물어 뜯고.... 제일 상대하기 힘든 것은 생식을 하려 들 때였다. 무작정 고기도 씻지 않은 더러운 손으로 쪽쪽- 뼈를 발라내서 먹는 걸 보면 정말....... 그럴 때마다 한 대 때려줄까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이 솟아 오르지만, 아쉽게도 체력 면이 다른 터라 그럴 수도 없었다. 그저 참는 게 약이었다. 전에 한 번 그걸 가지고 인상을 찌푸렸더니 저도 이젠 그게 나쁜 표정이란 걸 아는지 컁컁거리며 덮쳐대 왼쪽 발목마저 잘려나갈 뻔했다. 다행히 또 신체 일부분이 뜯어 먹히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지만 대신 등에 커다란 손톱 자국을 네 개나 만들어야 했다. 아직은 짐승에 가까운 놈이란 걸 망각한 대가였다. "정말로 안 돼. 어제도 많이 했잖아." "맛있어. 먹고 싶어." 화륵- '이 사람'.... 정말 자기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으면 소원 없겠다. 제 나름 야릇한 뜻으로 귀에 들려오는 말에 얼굴을 붉히며 그가 고개를 숙였다. 손가락을 모아 누르는 뺨이 뜨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까드득- "악!!!" 이런 개 같은...!! 혼자 발긋발긋해 있던 그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제대로 식인 습성이 돋았는지 또 다시 급작스레 그의 발끝을 물어 뜯은 탓이었다. 왼쪽 발의 새끼 발가락 하나를 꿀꺽- 삼킨 '그것'이 제 입술을 혀끝으로 핥더니 피가 물컹 배어나오는 그의 상처부위를 할짝였다. 네 발로 엎드린 채 개처럼 그의 상처를 핥는 '그것'의 행위에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으...흐흐...." 겨우 사람다운 면을 발견해 조금은 희망을 갖게 되었는데....... 여전히 '이 사람'은 '개자식'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사람의 자식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이것'의 모습. 이렇게 돌발적인 사태엔 어떻게 해야 될 지 알 수가 없었다. 잘 지내나 싶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흐으...흐.... 어허허어엉~!!" 차라리 죽어버릴 걸. 그렇게 메말라가며 죽어버릴 걸. 아니. 그보다 먼저 그냥 바다에 빠졌을 때 죽었으면 좋았을 걸. 이렇게 살아서 뭐하려고....... "맛있어. 달콤해." "흐...흐으...." 그의 슬픈 기분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그것'은 상처난 발을 할짝이며 "맛있다."고 중얼대고 있었다. "...싫어.... 하지 마....... 하지 말...우윽.... 말라구~!!" 츄웁- "좋아. 달아. 계속 먹고 싶어. 절대로 그만두고 싶지 않아." 벽과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 그런 커다란 장벽을 앞에두고 있는 심정. "갖고 싶어." "싫어." "다 먹어버리고 싶어." "싫어." "안 돼?" "싫어! 싫다구!! 싫다고 했잖아!!! 내 말 안 들려?!! 싫다고!! 싫어!!!" 짜악- 바락바락 악을 써가며 고의적인 따귀를 치자 '그것'의 뺨이 발갛게 부어올랐다. 순간 뜨끔하긴 했지만 이번엔 전처럼 놀라기보다 악에 받친 표정으로 '그것'을 응시했다. 더 이상 벽보고 얘기하는 짓따윈 싫었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았다. "난...짐승과 대화하고 싶지 않아. 다시는 말하지 않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그것'은 미간을 찌푸린 채 갸웃거렸다. "대화?" "말 안 할 거라고! 모르겠어?! 내가 왜 맨날 벽보는 사람처럼 답답해 해야 하는데?!! 제발 사람이면 사람 답게 행동하란 말이야!" "사람?" "......." "사람이 뭔데?" 전 같으면 조금 고민하긴 하겠지만 대답해주었을 것을 팩- 고개 돌려 피했다. 그가 눈까지 꾹 감아버리자 어슬렁대는 걸음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손을 바닥에 대고 걷는 걸 더 익숙해하는 '그것'의 소리였다. "사람이 뭐야? 뭔데?" "......." "소리 내 봐. 나 좋아. 먹이 소리 좋아." "......." 와락- "욱!!" 갑자기 앞에서 덮쳐온 '그것'의 행동. 급작스런 일이라 등이 바닥에 부딪히며 본능적으로 신음을 흘렸다. '그것'이 흐흐...하고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냈다." 낮게 깔리는 허스키한 목소리.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랐다면 분명 배우가 되기 딱 좋은 짐승이었다. 즐거워하는 목소리에 기가 차서.... 그는 입을 벌리고 하! 하며 혀를 차곤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 한 마디 목소리에 '그것'이 다시 씨익- 비끌린 미소를 지은 탓이었다. '그것'의 저 미소가 싫었다. "또 소리 내 봐. 응?" "......." "소리 내 봐." 툭- 툭- 그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리고 굴리며 '그것'이 그를 향해 나즉히 불렀다. "먹이야. 응? 소리 내 봐." "......." "흐응~...." 갑자기 소름이 좌악- 올라오며 신경이 바짝 곤두서기 시작했다. 뭔가 위험한 일이 벌어지기 이전의 전조임이 틀림 없었다. 예민해진 감각의 전부가 꾹 감긴 눈을 넘어 '그것'에게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감긴 눈의 탓으로 시각은 없었지만 새로운 제 6감이라도 생겨버린 듯.... "허억!" 덥석- 다리가 들리며 그가 또 한 번 놀란 신음을 토했다. 온몸이 파르륵- 떨려왔다. 분명 이 뒤의 행위가 무엇일지 이젠 몸부터가 바로 알아챌 만큼의 시간이 흘러간 상태였다. 푸욱- "끄...." 간신히 이를 악물어 하부의 끊어질 듯한 통증을 억누른 그가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그 잇새로 녹슨 쇳물 같은 피맛이 흘러들었지만 그래도 가느다란 신음 이외의 큰 소리는 참을 수 있었다. "흐...으...." "소리...내...봐. 허억...음...." 싫어! "......." "소리 내. 응?" "......." 느릿하게 파고들며 은근슬쩍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그것'은 탐색전을 펼치고 있었다. 천천히 잠식해 들어오기 위해 속도를 높이며 그의 정신을 빼놓으려 했다. 질퍽하게 박혀 드는 '그것'의 물건에 여러 번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흐...!!" "으응~.... 하아~!!" 주륵- 여전히 장벽을 뒤흔드는 느낌과 함께 마무리된 사정의 느낌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것'은 거친 짐승이었다. "......." "소리 내 봐. 응? 소리 내 봐. 어서." "......." "크르르릉." "......." 위협적인 울음소리가 귀에 꽂혔지만 어째서인지 머리까진 전달되지 않았다.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나 들리는 것 같은 목소리에 입술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어서!" 까드득- 세찬 비명과 함께 숲이 또 한 번 들썩였다. 푸드득대는 새들의 날아오르는 소리가 비명을 묻었다. "으...흐윽...!!" 또 다시 '오른쪽 집착증'을 발휘하며 '그것'이 그의 발목을 물어 뜯었다. 물린 뒤 둥글게 마모된 발목이 또 다시 너덜거리며 핏물을 뿜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꿀럭대며 흘러나오는 다량의 피가 또 한 번 그를 섬뜩하게 만들었다. 할짝- "좋아." "으...흐흐...흑.... 으흑!!" "가질 거야. 평생 내 거야. 너무 좋아." "흐...으......윽!!" 난.... 네가 제일....... 싫어. ==================================================== 네이밍 센스 참...-_-; 점점 바닥을 달리는 이 센스에 미칩니다...-_-; 오늘 비앤비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아직 씻지도 않아서 바빠 죽겠습니다...;(이 녀석은 지방민이라 새벽 차를 타고 올라가야 한답니다...;) 원래 1시에서 2시 사이에 올리겠다고 했는데 지금 벌써 5시가 다 되어가는 군요...; 정말 죄송합니다...OTL 요즘 몸 상태가 영~ 안 좋은 관계로...; 결국 화요일에 병원에 갔다가... 약물 치료를 받으며...상태가 더 악화되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고...ㅠ.ㅠ 감기 때문에 하루 종일 가래 끓는 기침 소리를 내야 하고...; 아이고...이런 골골한 녀석 같으니라고...oTL 된다된다 싶더니 또 이야기가 이상해져 버렸습니다...; 이번 편에 방향성을 지시하겠다고 했습니다만...; 더 알 수 없게 되어버리다니...-_-;; 원래는 이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이렇게 되더군요...; 죄송합니다...ㅠ.ㅠ 식인종의 가예약을 받고 있습니다. 동인보드나 인포란 등을 통해 확인해 주시고요. 집에 돌아와서 광고 한 번 더 올리겠습니다...ㅠ.ㅠ/ 어떻게든 내봅시다, 우리...ㅠ.ㅠ/ 자~, 모두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ㅅ+/ 사랑합니다~*^-^*